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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규님(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 체육・스포츠 발전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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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5-04 23:24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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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는 일상이다

1985년 체육교사를 시작으로 약 40여 년 간 현장에서 체육을 지도하는 선생으로, 교수로 살았지만 요즘만큼 스포츠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시기도 없었다. 이제 스포츠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이나 전공자들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든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이 되었다. 한강변이나 공원에 가면 러닝크루로 불리우는 달리기 동호회에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남성이 많았던 프로야구장이나 골프장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영장이나 스포츠교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실시하는 생활체육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6명이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스포츠가 일상이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정부에서도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생활체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이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잘 즐기기 위해서는 시설, 지도자, 프로그램의 삼박자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 한국형 골든플랜이 필요하다.

스포츠에는 많은 종목이 있고 종목마다 시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하는 종목은 걷기, 헬스, 등산, 수영, 축구, 골프 순으로 나타나는데 걷기와 등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은 스포츠 인프라가 없으면 즐길 수 없는 종목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일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거주지 인근에 스포츠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동호회가 학교나 공공시설을 독차지하고 있거나 학교체육시설 개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최근 인기가 높아진 테니스도 테니스장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라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스포츠시설이 부족하다. 정부가 88 서울올림픽 이후 생활체육 정책을 추진하면서 공공체육시설 조성을 지원하였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므로 앞으로도 체육관이나 수영장 등 기본 스포츠시설을 좀 더 조성할 필요가 있다. 주민의 입지조건을 고려해 많은 사람이 가깝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생활권 안에 조성해야 한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우는 독일의 경우 도심의 숲과 공원에는 걷기나 조깅을 할 수 있는 산책로와 축구장, 테니스장, 농구장 등 다양한 스포츠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전국에 다양한 생활체육시설이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어 9만개가 넘는 스포츠클럽이 결성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 3명만 모이면 스포츠클럽을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클럽이 활발한 국가이며, 전 국민의 삼분의 일 이상이 스포츠클럽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생활체육을 즐기고 있다.

 

독일 국민들이 이처럼 활발히 스포츠활동을 즐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골든플랜이 있다. 구 서독이 1960년부터 15개년 계획으로 출발시킨 스포츠시설 건설계획인 골든 플랜(Golden Plan)’은 전 세계적으로 생활체육 정책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다양하고 편리한 체육시설이 확충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스포츠클럽이 조직되어 있다. 정부와 독일 체육회는 학교와 스포츠클럽이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결과적으로 헬스의 경우 도시의 피트니스 스튜디오는 월 80~100유로인 반면 스포츠클럽 평균 성인 월회비는 7.5유로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모든 국민이 저렴하고 편리하게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스포츠시설을 집중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

 

- 스포츠지도자가 인정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필수로 갖추어져야 할 요소 중 하나가 스포츠지도자이다. 국민들이 생활체육 활동에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생활체육인을 올바르게 지도하고 관리 할 수 있는 생활체육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는 그간 대학에서 많은 스포츠지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엘리트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이나 코치, 그리고 생활체육을 지도하는 지도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특히 각 지역의 현장에서 생활체육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으나, 계약직은 정규직으로 신분만 전환되었을 뿐 임금이나 처우 개선 등 후속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처우가 열악하다. 생활체육지도자의 경우 현장에서는 1년차와 16년차의 기본급이 동일하며 근속에 따른 수당도 15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성 없는 임금 체계와 근로조건은 체육지도자의 근무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장기근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체육지도자의 임금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활체육지도자의 경제적 불안은 우리나라 체육계의 기반이 되어야 할 생활체육에 악영향을 미쳐왔으며, 우리나라 체육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수한 생활체육지도자를 확보하고 이들로부터 전문적인 지도력과 서비스를 이끌어내기 위해 양호한 근로조건과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안이므로 체육지도자가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고용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스포츠 서비스를 받는 국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소속되어 학교운동부를 지도 감독하는 학교운동부지도자의 처우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흔히 감독, 코치라고 불리는 학교운동부 지도자는 학생선수를 가르치는 교육자임과 동시에 학생선수를 가르치며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경기력을 발휘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격상시키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등 국위 선양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운동부 지도자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으로 2019년 기준으로 보면 학교운동부지도자의 근로 소득은 연평균 2,600만원이고, 70%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스포츠 인재를 양성하고 국위를 선양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학교운동부지도자가 일용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학교운동부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환경은 열악하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할 정도여서 한국스포츠계의 발전과 역행하는 모습이다. 생활체육지도자나 학교운동부 지도자 모두 생활체육과 선수 육성 현장에서 국가를 위해 이바지하는 만큼 사회구성원으로 그들의 역할을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학교체육이 바로 서야 한다.

체육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교육의 기초였다. 당시 초등 교육기관으로 팔레스트라(Palestra), 중등 교육기관으로 짐나지움(Gymnasium)이 있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체육활동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요즘에도 독일 등에서 중등 교육기관을, 미국에서는 체육관을 짐나지움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서구 사회의 학교 교육에서 차지하는 체육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에서 체육의 위상은 어떠한가? 초등학교는 수업 시간표에는 체육이 없다.

 

통합교과라는 이름으로 체육·음악·미술 융합수업이 있을 뿐이다. 일본, 핀란드, 프랑스, 호주 등은 초등 1학년부터 독립된 체육 수업을 하지만 한국의 체육교육 대상은 초등 3학년부터다. 입시에 치우친 고등학교에서는 존재감이 아예 없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고 하는데 총 이수학점이 축소되면 고등학교의 체육시간은 더욱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가 팝스를 통해 초등 4학년부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체력을 평가하고, 전학년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체육활동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 같으나 학교현장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2012년 학교폭력 등이 사회문제화되자 이를 예방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중학교 체육 시수를 주당 2.7시간에서 4시간으로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체육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넣었다. 학교체육 활동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스포츠사교육으로 부족함을 메우고 있고 부모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신체활동 기회가 달라지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체육은 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체육시간 증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저학년부터 체계적으로 체육교육을 시작해 신체활동 교육을 책임지는 공교육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평생운동의 기본을 닦는 만 5~7, 기본움직임 기술이 개발되고 정교해지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체육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어 평생 건강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학교체육 정책을 제대로 실행해야만 한다. 이는 내가 그간 교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국민과 정책입안자들과의 이해와 존중의 파트너십이 잘 소통되어 이러한 정책들이 잘 실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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