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록님(전 과기부 차관)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창의력을 드높이는 소프트파워(어울-리더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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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14 16:30 조회1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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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점령한 스페인의 하드파워(깃발리더십)은 몰락
북미를 점령한 영국의 소프트파워(어울리더십)은 성공
500년 전의 ‘대항해시대’는 무적함대의 총칼을 앞세워 금, 은 자원이 풍부한 남미 신대륙을 스페인이 선점하며 패권자가 되었다. 뒤늦게 패권경쟁에 뛰어든 영국에게는 춥고 검은 숲으로 가득한 북미지역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숲 속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인디언들의 공격과 긴 겨울의 추위는 스페인의 관심 밖이었다.
스페인은 눈 앞의 금은보화를 위해 가차없이 채찍을 들었고 남미의 거의 모든 지역을 철권통치로 다스려 피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후 50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식민지는 아직도 손과 발의 근육의 힘에 의존하는 힘 없는 나라로 모조리 전락하였다.
반면 후발주자였던 영국은 불리한 여건하에서 끊임없이 원주민들과의 갈등을 반복하며 전진하지 못하게 되자 전략을 바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공존, 협력이다.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총칼의 위협이 아니라 창의적인 생각과 상호 협력으로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는 제도의 정립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들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과 동시에 창의성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중심의 두뇌 근육을 키우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징표가 미국헌법 제1조 8항에 담긴 특허 보호조항이다. 지식자원의 존중은 원천적으로 평등사상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자유주의를 지향해야 가능하다. 500년이 지난 지금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지역은 소프트파워라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나 더욱 막강한 힘으로 무장하여 세계 혁신경제의 메카로 발돋움하였다.
2024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에쓰모 글루’의 시각에서 본 국가의 흥망성쇠는 자원의 유무와 국토의 크기를 떠나 국민의 창의력을 격려하는 나라는 성장하고 억압해온 나라는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손발의 부지런함을 앞세운 하드파워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다음 단계는 두뇌의 창의성을 거침없이 표출하게 하는 소프트파워다.
집현전을 두어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발굴한 세종대왕과 규장각을 만들어 실학자 정약용을 발굴한 정조대왕의 뜻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유네스코가 한국인 최초로 다산 어른을 2012년 올해의 인물로 등재한 바 있다. 비록 그들을 발굴했던 군주가 서거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격려 받지 못했으나 그들이 남긴 자취는 하드파워가 강한 조선이 아니라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를 꿈꾼 흔적들이다.
20대 대통령까지의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근면/자조/협동을 바탕으로 근육의 힘을 키우는 하드파워가 강한 교육, 문화, 제도, 금융이 자산이었다면 21대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새로이 가다듬어야 할 딱 맞는 시기에 서있다. 이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힘을 키우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세상을 쥐고 흔드는 새로운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대선 기간의 시대정신으로 내세웠다면 이제 국민의 창의력을 격려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만들 줄 알게 하는 교육, 위험을 회피하는 융자중심이 아니라 감수하는 투자중심의 금융, 누리려고 노크하는 자에게는 지옥이나 봉사하려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천국인 정치,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글로벌 경제를 향해 소프트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으로 대 전환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소프트파워!
과학적 사고-풍부한 호기심-정직한 투명성이 자산!
정치권은 이념타령에 과거를 헤매고 있을지라도 자원빈국의 우리경제는 천신만고 끝에 2020년 GDP 1.7조 달러로 당당히 세계 10위에 진입한 바 있다. 거친 도로사정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만약에 기업의 가치창출 활동이 정치 수준만큼이나 빈약했다면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0년 우리 경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턱없이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더 깊이 밭을 일구고 품앗이하며 더 늦게까지 일한 덕분이다. 손발이 더 붓고 근육이 지치더라도 참고 이겨내는 하드파워를 발휘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경제 10위권까지 성장해온 우리의 얘기다. 1973년에 원유 한 방울, 철광석 한 톨도 없는 나라에서 무모하리만큼 <중화학입국>을 선언하고 포항, 울산, 광양과 같은 도시를 열었다.
그 후 10년 만에 유선전화 1대의 값이 집 한 채였을 때 감히 <정보통신산업입국>을 선언하고 당시 정부(체신부)직영 통신사업을 해체하며 국영기업,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발족하여 매출의 2%를 정부가 회수하여 ICT연구개발에 쏟아 부었다. 이후 전자통신연구원을 통해 세계에서 7번째로 전자교환기를 자체 생산하였고 반도체 산업을 일궜으며 코드분할 다중방식(CDMA)이라는 무선통신 표준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하였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두 과학기술 기반의 경제정책이 성공하여 지난 50년의 우리경제가 여기까지 성장해온 것이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연평균 무역흑자가 750억 달러였다. 그 중 ICT산업 한군데서 100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만약 ICT산업의 무역수지가 0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무역수지가 250억 달러 적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정책이 개도국의 값싼 임금과 중국의 경쟁에 밀려 점점 고목이 되어가고 있다. 2020년 세계10위를 정점으로 우리의 GDP위상은 매년 한 단계씩 내려가 현재 멕시코, 인도네시아에 뒤져 15위로 내려앉았다.
빨리 제3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100억 명이 100세를 살게 되는 1조세 시대를 리드할 나무여야 한다. 그것이 의료, 제약, 식품을 망라하는 <생명과학입국>이 바로 그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는 전세계 GDP 88조 달러 중 18조를 차지하는 생명경제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2023년도 노벨과학상 3종세트는 물리학의 아토초(Atto Second), 화학상의 퀀텀 닷(Quantum Dot), 의학상의 메신저RNA(mRNA)가 차지했다. 이 세가지 기술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원자 이하의 세계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다. 이제 이 도구를 통해 생명과학의 단초가 되는 미시 원자 분자 유전자의 세계를 제어함으로써 의료, 제약, 식품산업의 혁신적 발전이 가능해졌다.
의대 정원문제를 단순한 의사의 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생명과학이 파생하는 거대한 생명경제를 리드할 <연구하는 의사>의 확충이라는 새로운 명제를 앞세웠어야 더 설득력 있는 정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KAIST에 해당하는 테크니온 공대의 의대는 출발부터 100% 연구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학교이며 가장 뜨거운 생명과학 혁신/창업의 산실이다. 100억 명이 100세를 사는 1兆歳시대를 앞두고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생명과학의 시대(Biological Century)를 선언한 이유다.
최근 20년간 우리의 근육에서 나오는 하드파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한계에 다다르며 과학기술이라는 두뇌의 근육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도전에 직면해왔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꾸려가며 스스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뇌의 근육이 부족한 기업은 대부분 값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 중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좋은 기술이나 특허는 200여 개 나라의 국경을 관통하며 세계를 무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FTA를 통해 국경을 낮추고 현재 세계경제 10위권까지의 진입 과정이 그랬다.
그러나 발로 딛고 있는 지구가 속한 우주(Universe) 외에 또 하나의 디지털 지구(Meta-verse)가 생겨났다. 이 새로운 지구는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로 둘러 쌓여있으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간이다. 53년 전 발사된 아폴로11호의 컴퓨터 용량이 불과 64Kbyte였으나 지금 우리 호주머니에 담긴 스마트폰의 용량은 자그마치 400만 배나 더 큰 256Gbyte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인이 1년에 만들어낸 데이터의 총량은 256Gbyte 스마트폰에 담았을 때 지구에서 달까지 7번이나 왕복해야 할 만큼이다. 콜럼버스 이래로 500년 만에 찾아온 데이터 대항해시대의 도래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데이터 대항해 시대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안전한 AI라는 배가 필요하다. 이 배는 바람, 증기, 전기로 움직이지 않는다. 바야흐로 소프트파워 중심의 세상이 온 것이다.
무한대를 향해 폭발하는 데이터 빅뱅시대는 원료를 제품으로 잘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상상(Imagination)을 혁신(Innovation)으로 만드는 새로운 경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세계 20위권의 기업들 중에서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하드파워 기업은 오직 ‘사우디 아람코’ 하나뿐이다. 나머지 아마존, 구글 등 19개는 눈으로 보이는 제품이 아니라 상상(0)을 혁신(1)으로 만든 소프트파워 기업들이다. 상상이란 과거로의 여행인 기억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미리 가보는 미래로의 여행을 의미한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깃발-리더십>을 내리고 <어울-리더십>을 올려라
이제 3년 전 세계 10위에서 지금은 멕시코에 추월 당하며 14위로 가라앉고 있는 우리경제가 한자리 수 진입을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직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앞장서서 개척하는 것이다. 1을 2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0을 1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은 누구도 아직 가본적이 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비난이 아니라 격려를, 실패하더라도 용기를, 두려워하더라도 같은 편이 되어주는 따뜻한 문화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소프트파워가 바로 그런 문화다.
이제 글로벌 경제대국에 걸맞은 리더십을 새로이 정립할 때가 되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깃발을 앞세우며 따라오라는 깃발-리더십(하드파워)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어울-리더십)소프트파워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리더십의 출발선은 과학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며 국민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줄 만한 참신한 비전이다.
시속 10Km로 달리는 마차의 마부는 10m앞을 주시하면 된다. 시속 100Km의 버스 운전자는 100m전방을 주시해야 한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달리는 세상의 정치라는 운전자는 레이더를 동원하여 지평선 너머까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가시권을 뛰어넘어 누가 더 먼 미래를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을 가졌느냐의 경쟁이다. 눈에 보이는 범위의 국가경영이 하드파워 중심의 리더십이었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나 훨씬 더 중요한 힘, 소프트파워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있다.
지식의 양(Knowledge Volume)을 늘리는 하드파워 교육에서 상상력의 다양성(Imagination Spectrum)을 추구하는 소프트파워 중심의 교육, 위험을 회피하는 융자중심의 금융에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줄 아는 투자금융, 봉사하려는 자에게는 천국이나 누리려는 자에게는 지옥인 정치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사회, 문화, 금융, 교육, 외교, 국방 모두가 하드파워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소프트파워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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