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님(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22 12:29 조회8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022년 1월, 나는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에는 20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국민들은 또 한 번 정권 교체에 희망을 걸고 있었고, 정치권은 반복되는 권력 투쟁 속에서도 미래보다는 현재의 권력 쟁취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책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의 실패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는 초유의 사태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이 질문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통해 파면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대한민국 정치 운영의 근본을 되짚어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대통령이 실패하는 것은 한 사람의 자질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반복하게 만드는 정치 구조, 제도, 관성의 문제다. 나는 이 점을 반복해서 지적해 왔다. 그리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사례는 그 경고가 결코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또 한 명의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권력 구조가 여전히 근본적인 개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 비극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는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어왔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직 인사들은 여전히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무력화한 채 임명되고 있으며, 정당은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 매몰돼 정작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책임은 흐릿하고 권한은 집중된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모든 성패를 떠맡기는 구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나는 '마지막 대통령제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그러나 그 후 3년 동안 펼쳐진 정치의 현실은 오히려 나의 경고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반증해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정치적 기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당선 직후 대통령 권한에 지나치게 의존한 국정 운영을 선택했고, 국민과의 소통보다 권력 내부의 충성 경쟁에 기댄 인사와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갈등은 심화되고 국정은 마비되었으며, 결국 헌정 질서의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정치가 정치를 멈췄다
정치가 정치의 본질을 상실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구조’가 아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민 통합보다 정쟁과 적대에 의존하는 정치 방식을 선택했고, 정권 초기 1년이 국정의 황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야당과의 대화는커녕 협치의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정치는 스스로를 정지시켰고, 정책은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관료주의에 맡겨졌으며, 국민의 삶은 변화보다는 불신 속에 방치되었다. 특히 노동·복지·교육 등 미래를 설계해야 할 분야에서는 어떤 일관된 비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정책이 이어졌고, 정치권은 내부 권력 싸움에만 몰두했다.
탄핵이라는 극단적 사태는 그저 ‘정치 보복’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는 정당 정치와 권력 구조가 스스로 개혁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다시 꺼내드는 질문, 무엇이 바뀌었는가
2022년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나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구조와 환경이 문제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본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제도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당이 바뀌어도, 국정 운영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시스템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우리는 다시 한번 대선에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이 대선이 단순히 기존 정치의 반복에 그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정치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정권 교체로는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세 가지가 존재한다.
첫째, 대통령 권한의 분산과 실질적인 견제 장치 마련.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의 권력 집중 구조가 지속되어 왔다. 이 구조는 지방과 국회를 철저히 주변화시키고, 실질적인 민의를 반영하기보다는 중앙의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비효율적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는 대통령의 인사권, 예산권, 정책 기획 기능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와 독립기구로 분산시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단지 권력 분산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기능해야 한다.
둘째, 정당 구조의 민주화와 국민참여 공천제 도입.
정당의 권력 구조는 이제 스스로 해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공천권을 둘러싼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권력 구조는 당내 민주주의의 발전을 방해해 왔다.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정당이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예비경선제도 도입을 요구한다. 또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확대는 정당 내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정당 내 분권적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은 더 이상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그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대통령제의 근본적 재검토.
현행 대통령제는 그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국민 통합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제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는 중장기적으로 이원집정부제나 책임총리제 등 새로운 형태의 정부 구조 개혁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단지 정치인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마지막 대통령을 바랐던 이유
나는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의 마지막에서 “이제 더 이상 실패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음 대통령은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마지막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는 ‘마지막 대통령’을 바란 내 바람이 허망한 외침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말하고 싶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어야 한다. 다시는 한 개인의 성향이나 정무 감각에만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국민이 또 하나의 탄핵을 지켜보며 “왜 또 실패했는가”를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고, 다가오는 21대 대선이 반드시 답해야 할 시대의 질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